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조중묵 필, 조선, 1868, 128×360cm

최근 글

만물초(萬物草), 김응환 필, 조선, 1788~1789, 32.2×43.0cm

투란이 묘사된 거울, 투란이 묘사된 거울, 기원전 4세기 말, 지름 10.5cm,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문명

멘르바, 기원전 5세기, 높이 24cm,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문명

중화궁인(重華宮印), 조선시대, 7.2×7.2×6.7㎝

‘중화궁인’의 인뉴(印鈕, 도장 손잡이)는 서수(瑞獸, 상서로운 짐승) 모양이고, 인면(印面, 도장에 글자를 새긴 면)은 ‘重華宮印(중화궁인)’을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독특한 서체로 조각되어 있다. 궁(宮)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에서 ‘중화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관련정보 MEDIA N | 문화재청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 조선 19세기, 높이 10.2㎝

조선 19세기 분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단아한 형태의 사각호로, 바닥면에 청화(靑華)로 쓴 ‘履洞宮(이동궁)’이라는 명문이 있다. 분원 관요(分院 官窯)란 조선 시대 왕실·관천용 도자기 수급을 위해 조선 시대 경기도 광주 일대에서 운영된 도자기 제조장이다. 청화(靑華)는 자기에 색이나 문양 등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안료의 일종으로 푸른빛을 띠며, 백자 바탕흙(태토, 胎土) 위에 청화로 문양을 그린 백자를 청화백자라고 한다. 
궁(宮)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왕실 가족의 궐 밖 궁가는 사동궁(寺洞宮)과 계동궁(桂洞宮) 등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백자호에 쓰여 있는 ‘이동궁’의 이동(履洞) 역시 서울의 한 지명(현재 서울시 중구 초동 일대)으로, 이 백자호는 혼인 후 이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 숙선옹주(淑善翁主)의 궁가에서 사용된 기물로 추정된다. 
이동궁(履洞宮)은 『명온공주방상장례등록』과 『내탕고상하책』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관련정보 MEDIA N | 문화재청

익안대군 영정(益安大君 影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