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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22호 창덕궁 성정각

성정각은 희정당을 지나 후원 가는 길옆에 위치하였으며, 이 권역은 과거 동궁에 포함되는 영역이다. 성정각은 조선시대의 동궁(東宮)에 속한 전각이자 세자가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다. 본래 세자의 공부방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이 일대가 왕가의 내의원으로 쓰였다. 성정각은 단층의 몸채에 중층의 날개채가 직각으로 붙은 모습이다. 

성정(誠正)이라는 명칭은 공자의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이라는 말에서 따왔으며 학문을 대하는 정성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한다. 날개채의 남쪽에는 보춘정(報春亭)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동쪽으로는 희우루(喜雨樓)라고 현판을 달았다. 

관물헌은 성정각(誠正閣) 북쪽에 위치해있다.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의 개화당은 창덕궁 중에서도 가장 협소한 관물헌으로 고종을 이어하게 하였고, 이곳을 그들의 작전본부로 삼았다. 개화당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소수의 병력으로도 청군(淸軍)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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