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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1764호 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차하고 있다. 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똑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원래 왕의 연침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낙선재가 지어지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를 위하여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낙선재는 남행각에 나있는 정문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에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자리 잡고 그 좌측에 서행각이 남행각과 직교로 연접해 있다. 

낙선재는 궁궐 내의 침전건축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주택형식으로 건축되었으나, 궁궐침전형식이 응용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양의 장식이 특히 주목되며, 조선 후기 건축 장인(匠人)들의 축적된 기량을 엿볼 수 있어 건축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왕가의 실제 침전으로 사용된 역사성도 중요한 건물이다. 


창덕궁 성정각과 낙선재 사이 후원으로 연결되는 곳은 원래 세자의 공식적인 활동공간인 동궁. 즉, 중희당이 있던 자리이다. 칠분서는 삼삼와의 북쪽으로 연결된 건물로서, 과거 동궁의 중희당과 삼삼와를 연결하였던 복도각이다. 

삼삼와는 여섯 모둠 집이라는 뜻이며 승화루와 함께 귀한 서적을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승화루는 ‘소도합루’라고도 하였는데 건물의 모양과 성격이 주합루와 닮았으며, 주합루와 같이 다양하고 방대한 서적을 소장하였다. 승화는 ‘정화를 잇는다’는 의미이며, 고금의 서적을 통해 그 정수가 될 만한 뛰어난 부분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이다. 승화루, 삼삼와, 칠분서 세 건물은 모두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각정은 관을 발인할 때까지 두던 빈전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는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뚝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상량정(上凉亭) 누각으로 낙선재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립 연대는 불명이지만 1820년과 1908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궁궐지의 기록에 따르면 본래는 평원루(平遠褸)라고 불렸다. 한정당(閒靜當) 상량정 동쪽에 위치한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외관은 전통 한옥의 별당처럼 보이지만 문은 창호가 아닌 유리로 마감했으며 기단 바닥은 타일을 깔아놓은 점이 특징이다.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취운정 수강재 북쪽 화계 위에 위치한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정자들과 달리 한겨울에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본래 편액이 남아 있지 않았으나 기록을 통해 취운정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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