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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전도(華城全圖), 조선, 전체길이 196cm, 전체너비 37cm, 길이 166cm, 너비 34cm

열두 폭 화면에 우아優雅하고 장엄莊嚴한 면모를 갖춘 화성을 그린 도성도이다. 화성은 팔달산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그 산 아래 행궁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도시계획원리에 입각해서 정조시대의 이상을 담아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었고, 실학을 바탕으로 그 당시 모든 기술을 집약하여 성곽을 건설하였다. 돌로 성곽城郭을 쌓은 화성은 네 개의 대문과 5개의 암문暗門이 있고, 두 곳의 수문水門이 있다.

대문은 동서남북으로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이 있는데, 이 중 장안문과 팔달문은 옹성甕城을 둘렀다. 성곽에는 장대將臺, 공심돈空心墩, 봉돈烽墩, 노대弩臺, 각루角樓, 적대敵臺, 포루.樓 , 포루砲樓, 치성雉城, 포사.舍 등 적의 침입을 방지하는 시설이 확인된다. 성곽은 총 둘레 4,600보(약5.8킬로미터), 위쪽의 두께는 약 2척 정도의 두께로 축조되었다. 화성 내 주요도로는 남북과 동서, 그리고 행국 앞 광로光路가 있다. 남북도로는 주거지 및 상업시설이 발달하였고, 동서도로는 행궁 앞에서 시작되는 도로와 북수문, 방화수유정을 연결하는 북쪽 도로가 있었다. 도성의 중심부에는 광교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어 도시의 배수나 용수에 역할을 하였다. 수로를 중심으로 민가가 형성되는 천통취락 배치원리에 따라 세천과 중천, 그리고 연못이 민가 배치의 중심 근간이 되었다.

수로에는 녹지 경관이 조성되었는데, 팔달산 일대와 성내외, 그리고 정조의 거둥길인 남북 주도로와 행궁 앞 광로에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러한 조림시설은 용연龍淵과 방화수류정, 남은구南隱溝 안에 남지南池가 조성되어 아름다운 경관이 갖춰졌다. 화성도는 산천과 성곽을 중심으로 중요한 지형물인 행궁과 관아건물, 누정樓亭, 사묘祠墓, 등과 외에도 풍속 등을 묘사하고 있다. 나무가 단풍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계절은 가을이다, 성곽의 표현이 비교적 세세하고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면상으로는 맨 위 북쪽에 서장대, 그 아래에는 화성행궁이 자리하고 있다. 행렬은 장안문을 거쳐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로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창룡문 안쪽 넓은 구릉지에 위치한 동장대에 이르러 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화성 축성 이후 정조는 주요 시설물들을 순행하였는데, 동장대도 방문한 곳 중의 하나였다. 1797년(정조 21) 정조는 동장대에서 수행하는 채제공의 시 ‘동장대에서 한가위 달구경하다’는 시운詩韻에 맞춰 직접 시 한수를 읊었다고 한다. 화면에서 동장대에 사열을 하듯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정조가 당시 군사훈련을 참관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동장대 북쪽에 사대射臺가 배치되어 활쏘기등 군사조련을 실시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병풍의 오른쪽으로부터는 군복 차림으로 말을 탄 채 행렬을 이끄는 1km에 달하는 깃발과 연주가 어우러져 있다. 행렬 곳곳에는 장용형 소속 친위부대들이 묘사되어 있고, 성대한 이동 행렬 주위에 백성들[觀光民人]이 구경을 나온 모습 등은 원행도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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